▲ 벤틀리가 2030년까지 전기차 전용 브랜드로 전환하겠다던 계획을 접고,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함께 생산하는 유연 전략으로 돌아섰다 ⓒ Wikimedia Commons
2020년, 벤틀리는 "2030년까지 전기차 전용 브랜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 선언은 사실상 철회됐다. Carscoops 보도에 따르면 벤틀리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한 생산라인에서 함께 만드는 유연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프랑크-슈테펜 발리저 CEO는 이를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1. 2020년의 약속 — "2030년엔 전기차만 만든다"
벤틀리가 전동화 전용 전환을 처음 공식화한 건 2020년 'Beyond 100' 전략 발표 자리였다. 당시 벤틀리는 2026년까지 내연기관 모델을 단종하고, 2030년까지 순수전기차 전용 브랜드로 완전히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명확했다. "지속가능한 럭셔리 모빌리티를 이끄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담하지만 시대 흐름에 맞는 선언이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가 내연기관 판매 금지 시점을 못 박고 있었고, 럭셔리 브랜드들도 앞다퉈 전동화 로드맵을 발표하던 시기였다. 벤틀리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탔다.
▲ 680마력 하이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로 무장한 더 뉴 컨티넨탈 GT S. 2020년 계획대로라면 이미 단종 수순을 밟았어야 할 내연기관 기반 모델이지만, 여전히 벤틀리 라인업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 벤틀리 모터스 공식
2. 왜 접었나 — 소비자도, 규제도, 시장도 예상과 달랐다
▲ 벤틀리는 플라잉스퍼를 포함한 기존 라인업에 내연기관·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 Wikimedia Commons
Carscoops에 따르면 벤틀리가 전기차 전용 전환 목표를 접은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소비자들이 완전한 전동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둘째, 규제 당국들이 애초에 내걸었던 공격적인 전동화 전환 시점에서 한발 물러섰다. 셋째, 시장 상황 자체가 예상보다 훨씬 불안정하게 흘러갔다. 2020년 계획을 세울 당시 전제했던 수요 곡선과 인프라 확산 속도가 실제로는 따라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프랑크-슈테펜 발리저 CEO는 이런 변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10년짜리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밀고 나갔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차를 만들어 왔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장기 로드맵을 미리 고정해두고 그대로 실행하는 방식 자체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3. 새 전략 — 같은 라인에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함께
벤틀리가 택한 대안은 같은 생산라인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전기차(EV)를 함께 만드는 유연 생산 체제다. 특정 파워트레인에 생산 설비를 고정하는 대신, 실제 수요가 어느 쪽으로 쏠리든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를 고정했던 2020년 계획과는 정반대 접근이다.
| 항목 | 2020년 'Beyond 100' 계획 | 2026년 현재 |
|---|---|---|
| 내연기관 | 2026년까지 단종 | 당분간 하이브리드와 병행 유지 |
| 전동화 목표 | 2030년 전기차 전용 브랜드 | 목표 철회, PHEV·EV 혼류 생산 |
| 생산 방식 | 전기차 중심 설비 고정 | 같은 라인에서 PHEV·EV 유연 생산 |
| 모델 개발 기간 | 평균 약 4년 | 약 3년으로 단축 목표 |
| 다음 순수전기차 | 2030년 이전 다수 출시 전제 | 2030년 이후로 연기 |
여기에 더해 벤틀리는 모델 개발 기간을 기존 평균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시장 변화 속도가 빨라진 만큼, 한번 정한 파워트레인 계획에 4년씩 묶여 있는 대신 더 빠르게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 유연화 전략이 뜻하는 것
벤틀리의 새 접근은 '전기차냐 아니냐'를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시장 상황에 따라 하이브리드 비중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생산 유연성을 확보해, 수요 예측이 빗나갔을 때 떠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 다이아몬드 퀼팅 가죽과 우드 베니어 마감은 파워트레인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벤틀리의 정체성이다. 유연 생산 체제 아래서도 이런 수작업 공정은 하이브리드·전기차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 Wikimedia Commons
4. 당분간은 '토르칼'이 유일한 전기차
▲ 컨티넨탈 GT를 비롯한 벤틀리의 핵심 모델들은 당분간 순수전기 버전 없이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 Wikimedia Commons
이 전략 전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모델이 벤틀리의 브랜드 첫 순수전기 SUV 토르칼(Torcal)이다. 토르칼은 당초 계획보다 거의 1년 가까이 지연된 끝에 공개됐으며,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설계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출력 876마력(HP), WLTP 기준 최대 약 600km(375마일) 주행거리를 갖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Carscoops에 따르면 벤틀리의 다음 순수전기차는 2030년 이후에나 나올 예정이어서, 토르칼은 앞으로 수년간 벤틀리 라인업에서 유일한 순수전기 모델로 남게 된다. 반면 벤테이가를 비롯한 기존 모델들은 당분간 전기차 대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생 모델을 통해 전동화 수요에 대응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이는 토르칼과의 라인업 중복을 피하기 위한 조정 차원으로, 아직 구체적인 확정 계획이 공개된 것은 아니다.
▲ 벤테이가 등 기존 SUV·세단 라인업은 토르칼과의 중복을 피해 하이브리드 파생 모델로 전동화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 Wikimedia Commons
✅ 벤틀리 전동화 전략, 이렇게 바뀌었다
· 2020년 "2030년 전기차 전용" 목표 → 사실상 철회
· 전기차 전용 생산 설비 → 하이브리드·전기차 혼류 생산으로 전환
· 모델 개발 기간 4년 → 3년 단축 목표
· 다음 순수전기차는 2030년 이후로 연기, 그전까지 토르칼이 유일한 EV
5. 요약
벤틀리가 2020년 'Beyond 100' 전략에서 내세운 2030년 전기차 전용 전환 목표를 사실상 접었다. 소비자의 전동화 준비 부족, 규제 당국의 전환 시점 후퇴, 예상보다 불안정한 시장 상황이 배경으로 꼽힌다.
새 전략은 같은 생산라인에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함께 만드는 유연화다. 모델 개발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 프랑크-슈테펜 발리저 CEO는 "10년짜리 장기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던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브랜드 첫 순수전기 SUV '토르칼'은 당분간 벤틀리의 유일한 전기차로 남을 전망이며, 다음 순수전기 모델은 2030년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