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은 7월 전기차 판매가 44.5% 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정부는 목표 하향을 검토 중이다
영국 정부가 전기차 판매 의무비율(ZEV 의무)을 낮추는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현행 규정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80%를 전기차로 채우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50~70%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나온 시점의 상황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7월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44.5% 늘어 월간 최고 기록을 세웠고, 이미 지난해 말에 2026년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목표를 못 맞춰서 낮추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1. ZEV 의무가 뭔가
먼저 제도를 이해해야 이 결정의 무게가 보입니다.
ZEV 의무(Zero Emission Vehicle Mandate)는 제조사별로 전기차를 일정 비율 이상 팔도록 강제하는 규제입니다.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제조사에 판매 비율을 할당하는 방식입니다.
채우지 못하면 미달분 한 대당 벌금을 냅니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목표를 맞추기 위해 전기차 가격을 낮추거나 내연기관차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소비자 보조금보다 훨씬 직접적인 압박입니다.
한국의 방식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한국은 구매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유인책 중심이고, 영국은 제조사에 의무를 지우는 규제 중심입니다. 전자는 예산이 들고, 후자는 예산이 거의 들지 않는 대신 제조사 반발이 큽니다.
▲ 영국은 플러그인 차량이 이미 연간 신차 판매의 약 40%를 차지한다
2. 숫자는 전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목표를 낮춘다는 것은 보통 달성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지표는 그 반대입니다.
| 항목 | 현황 |
|---|---|
| 7월 BEV 판매 | 전년 대비 +44.5%, 월간 최고 |
| 플러그인 비중 | 연간 신차의 약 40% |
| 2026년 목표 | 작년 말 이미 초과 달성 |
| 휘발유 가격 | 리터당 평균 1.62파운드 |
| 경유 가격 | 한때 리터당 1.92파운드 |
판매는 기록적으로 늘고 있고, 목표는 앞당겨 달성됐습니다. 게다가 유가까지 올랐습니다. 이란 전쟁 여파로 휘발유가 리터당 1.62파운드, 경유는 한때 1.92파운드까지 올랐습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전기차 수요는 더 늘어납니다.
기후 조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은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다섯 번째 열파를 앞두고 있으며, 열파로 이미 수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국토의 4분의 3이 가뭄 상태이고, 산불로 주택 19채가 파괴됐습니다.
시장 지표도, 에너지 가격도, 기후 상황도 모두 전동화를 밀어붙일 근거입니다. 그런데 정책은 반대로 갑니다.
3. 그렇다면 왜인가 — 평균과 개별의 차이
이 모순을 푸는 열쇠는 "전체 판매 비중"과 "제조사별 달성률"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시장 전체로는 전기차가 잘 팔립니다. 그런데 그 판매는 일부 브랜드에 몰려 있습니다. 테슬라나 중국 브랜드처럼 전기차만 파는 회사, 전동화 라인업이 두터운 회사는 목표를 쉽게 넘깁니다. 반면 내연기관 중심 라인업을 가진 제조사는 같은 시장에서도 자기 비율을 못 채웁니다.
이런 제조사에게 ZEV 의무는 두 가지 선택을 강요합니다. 벌금을 내거나, 내연기관차 판매를 인위적으로 줄여 분모를 낮추는 것입니다. 후자를 택하면 잘 팔리는 차를 안 파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는 고용과 세수에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중국 브랜드의 유럽 진출이 겹칩니다. 전기차 비율을 강제할수록, 그 비율을 채워줄 저가 전기차를 가장 잘 공급하는 쪽은 중국 제조사입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가 오히려 중국 브랜드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이 딜레마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앞서 다뤘듯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 생산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 전기차 비율을 강제할수록 저가 전기차를 공급하는 중국 브랜드가 유리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4.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동화 정책이 뒤로 물러나는 흐름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5년 9월 30일 최대 7,500달러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만에 순수 전기차 점유율이 12%에서 6%로 반토막 났고, 그 자리를 하이브리드가 채웠습니다.
제조사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혼다는 출시 직전이던 전기차 3종을 폐기하고 하이브리드로 방향을 틀었고, 제네시스는 전 차종 전동화 계획을 사실상 조정했습니다.
다만 영국 사례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미국은 수요가 꺾인 뒤에 정책이 따라갔지만, 영국은 수요가 늘고 있는 와중에 정책이 먼저 물러섰습니다.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정책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5. 정리 — 목표는 낮아져도 방향은 그대로
정리하면 영국은 2030년 전기차 의무비율 80%를 50~70%로 낮추는 검토를 8월 14일 시작했습니다. 판매는 44.5% 늘었고 유가는 올랐으며 기후 위기는 심화됐는데도 그렇습니다.
이 결정을 읽는 방법은 "전동화를 포기했다"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했다"에 가깝습니다.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라는 최종 목표 자체는 유지되고 있고, 바뀌는 것은 중간 단계의 강제 수준입니다.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정책 설계 방식에 있습니다. 한국은 보조금 중심이라 예산이 줄면 유인이 약해지고, 영국식 의무 할당은 예산이 안 들지만 제조사 반발에 부딪힙니다. 두 방식 모두 전환기의 중간 지점에서 조정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공식 협의가 시작된 단계이고, 최종 완화 폭과 시행 시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