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와 정자, 이끼 낀 바위가 어우러진 계곡 안 옛 별서 터의 가을 풍경

▲ 백사실계곡 안쪽에 남아 있는 별서 터. 조선시대 명문가의 정원이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사진=Wikimedia Commons (Chapchap123, CC BY-SA 3.0)

1. 궁궐도 한강도 아닌, 도심 속 세 곳을 잇는 산책

서울 도심에는 관광버스가 몰리지 않는 조용한 산책 코스가 여전히 남아 있다. 종로구 부암동의 백사실계곡, 인왕산 자락의 초소책방, 성북구 성북동의 길상사가 그렇다. 세 곳 모두 걸어서 둘러보기 좋은 거리에 있고, 저마다 사연이 있다. 백사실계곡은 조선시대 별서 터가 남은 생태경관보전지역이고, 초소책방은 반세기 넘게 청와대를 지키던 경찰 초소를 고쳐 만든 카페 겸 책방이며, 길상사는 고급 요정이었던 자리를 주인이 시주해 절로 다시 지은 곳이다. 세 곳 모두 산자락 좁은 도로에 자리해 있어, 자가용으로 갈 때는 미리 주차 상황을 확인하고 대중교통과 함께 계획하는 편이 낫다.

2. 백사실계곡 — 도롱뇽이 사는 도심 속 별서 터

백사실계곡은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일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골짜기에 있다. 계곡 이름은 조선 중기 문신 백사 이항복의 호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구전돼 왔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는 추사 김정희가 이 터를 사들여 별서를 새로 지었다는 문헌이 확인된다. 정확한 유래는 여러 설이 엇갈리는 셈이다. 계곡 안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새겨진 바위와 별서 터, 연못이 남아 있는데, 이 각자바위는 2008년 사적에서 명승 제36호로 변경 지정됐다. 백사실계곡은 도롱뇽·무당개구리·가재 등이 사는 1급수 청정 계곡으로, 서울시가 2009년 11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계곡 숲, 앞쪽에 오래된 돌기둥 흔적이 남아 있다

▲ 백사실계곡 별서 터에 남은 주춧돌과 우거진 숲.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사진=Wikimedia Commons (Chapchap123, CC BY-SA 3.0)

계곡 입구까지는 부암동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세검정 방면에서 올라가는 길과 부암동주민센터 방면에서 내려가는 길, 두 방향 모두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걷기에 부담이 적다. 별서 터 안쪽 육각정과 연못까지는 왕복 30분 안팎이면 충분하다.

아파트 단지 뒤로 우뚝 솟은 화강암 봉우리, 맑은 하늘 아래 인왕산 전경

▲ 화강암 봉우리가 도드라진 인왕산 전경. 백사실계곡은 이 산과 북악산 사이 골짜기에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MonasteryInwang, CC BY-SA 4.0)

3. 백사실계곡, 자가용보다 두 다리가 편한 이유

백사실계곡은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부암동 자체가 산자락 주택가라 도로 폭이 좁고(왕복 통행이 어려운 4m 안팎 구간이 많다), 주차 공급률도 종로구 평균에 크게 못 미쳐 갓길 정차가 쉽지 않다. 종로구가 부암동주민센터 인근에 '무계원 남측 공영주차장'(지하 1층·지상 2층, 총 22면)을 조성해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계곡 입구까지는 도보로 다시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나 시내버스로 환승해 '부암동주민센터' 정류장에서 내리거나, 세검정 방면은 상명대·석파랑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 방문 전 확인할 것

부암동 일대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 많고 불법 주정차 단속도 잦다. 공영주차장 만차 시 대안 주차 공간은 종로구청 교통과나 서울시 주차정보안내시스템(parking.seoul.go.kr)에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4. 인왕산 초소책방 — 청와대를 지키던 초소가 책방이 되기까지

인왕산 자락 중턱, 창의문 방향 성곽길 옆에는 옛 경찰 초소를 고친 카페 겸 책방이 있다. 이 건물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김신조 침투 사건(1·21 사태) 이후 청와대 방호를 위해 설치된 경찰초소 '인왕CP'였다. 50년 넘게 초소로 쓰이던 이 건물은 2020년 11월,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그대로 살린 채 시민에게 개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정식 명칭은 '인왕산 초소책방_더숲Ⅱ'로, 노원구가 운영해 온 복합문화공간 '더숲'이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1층에는 책방과 카페가 있어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실 수 있다.

단풍 든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인왕산 한양도성 성곽, 뒤로 도심 빌딩숲이 보인다

▲ 인왕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길. 초소책방은 이 성곽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Ethan Doyle White, CC BY-SA 4.0)

성곽 사이에 놓인 창의문 홍예문 너머로 산이 보이는 모습

▲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자하문). 부암동과 인왕산 자락을 잇는 길목에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hiwon Cho, CC BY-SA 2.0)

5. 초소책방, 주차는 3대뿐 — 걸어서 가는 편이 낫다

종로구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초소책방의 주차 공간은 단 3대뿐이다. 공단 스스로도 "주차 공간이 협소해 주차 대기로 주변 도로가 혼잡해질 수 있다"며 대중교통 이용을 권한다. 운영시간은 연중무휴 08:00~22:00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시내버스(1020·7022·7212)로 갈아타 윤동주문학관 정류장에 내려 도보 약 13분, 또는 마을버스 09번을 타고 수성동계곡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 약 10분이면 닿는다. 두 경로 모두 인왕산 자락길을 걷는 구간이 포함돼 있어, 책방에 닿기 전부터 이미 산책이 시작되는 셈이다.

인왕산 자락 산책로 주변 화단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모습

▲ 인왕산 자락길 주변 화단. 가을이면 계절꽃이 피어 산책로를 따라 걷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Wikimedia Commons (Syced, CC0)

숲속에 마련된 운동기구와 쉼터, 인왕산 자락길 곳곳의 편의시설

▲ 인왕산 자락길 곳곳에 마련된 운동기구와 쉼터. 초소책방을 오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yced, CC0)

돌로 쌓은 인왕산 성곽 옆으로 난 좁은 산책로

▲ 인왕산 성곽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초소책방을 오가는 길에 성곽 구간을 함께 걷게 된다 사진=Wikimedia Commons (Rtflakfizer, CC BY-SA 4.0)

세 곳 접근·주차 요약
장소자가용 접근대중교통 대안
백사실계곡전용 주차장 없음, 무계원 남측 공영주차장(22면) 이용 후 도보경복궁역 환승, 부암동주민센터·석파랑 정류장 하차
인왕산 초소책방주차 3대뿐, 대기·혼잡 잦음경복궁역 환승 버스, 윤동주문학관·수성동계곡 하차 도보 10~13분
길상사경내외 주차 공간 있으나 진입로 좁음, 성북동길 공영주차장 병행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환승, 버스 1111·2112·301

6. 성북동 길상사 — 요정 '대원각'에서 절이 되기까지

성북구 성북동 323번지의 길상사는 본래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다.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영한(1916~1999)은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985년 무렵부터 10년 가까이 법정 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요정 부지와 건물을 시주하겠다고 간청했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1995년 이를 받아들였고, 그해 6월 '대법사'로 등록한 뒤 1997년 12월 송광사의 말사 '길상사'로 다시 등록했다. 김영한은 이때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이곳에서 입적했다.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건물 처마 아래 '진영각'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고 문이 열려 있다

▲ 법정 스님의 유품과 사진을 모신 진영각. 길상사 경내 한쪽에 자리해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im1992, CC BY-SA 3.0)

기와지붕 요사채와 돌다리,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길상사 경내 풍경

▲ 길상사 경내의 요사채와 돌다리. 요정이었던 옛 건물의 골격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 h y numis, CC BY-SA 4.0)

경내에는 극락전·지장전·설법전 등의 전각과 길상헌·청향당·행지실 같은 요사채가 있다. 마당에는 가톨릭 신자였던 조각가 최종태가 만든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법정 스님이 종교 간 화해의 상징을 만들고 싶다는 뜻으로 제안해 2000년 4월 봉안됐다. 정병을 든 손과 화관은 관음보살의 모습이지만 옷차림은 성모마리아와 닮아, 불교와 가톨릭이 한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돌로 쌓은 작은 폭포와 관음보살상이 있는 길상사 경내 한쪽 풍경

▲ 길상사 경내 작은 폭포 옆에 자리한 석상. 산자락을 낀 경내 곳곳에 이런 조용한 공간이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 h y numis, CC BY-SA 4.0)

7. 길상사, 주차는 있지만 진입로는 여전히 좁다

길상사는 경내외에 자체 주차 공간을 갖추고 있다. 다만 성북동 자체가 고급 주택가로 도로 폭이 좁고 경사가 있어, 주말이나 단풍철에는 진입로가 붐빌 수 있다. 성북동을 오가던 셔틀버스는 2015년 4월 폐지됐고, 현재는 마을버스 성북02번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버스로 약 10분, 또는 도보로는 동소문로(삼선교) 방면에서 20~30분 정도 걸린다. 성북구는 주차난 해소를 위해 성북구립미술관 인근에 '성북동길 공영주차장'(노외 26면·노상 32면, 총 58면)을 조성해 두었으니, 길상사 진입로가 붐빌 때는 이곳에 세우고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돌다리와 팔작지붕 전각이 개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길상사 풍경

▲ 개울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와 전각. 요정 시절 조경이 사찰이 된 지금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S h y numis, CC BY-SA 4.0)

단풍나무 사이로 보이는 길상사 전각과 돌담

▲ 단풍이 물든 길상사 경내. 11월 초중순이면 경내 나무들이 한꺼번에 물든다 사진=Wikimedia Commons (S h y numis, CC BY-SA 4.0)

📍 방문 전 확인할 것

길상사 템플스테이나 법회 일정, 정확한 주차 가능 대수는 길상사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성북동 일대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 많아 갓길 정차가 쉽지 않다는 점도 참고할 것.

8. 세 곳을 하루에 잇는다면

세 곳은 모두 북악산·인왕산 자락에 있지만, 성북동은 산 반대편이라 부암동·인왕산 쪽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지름길은 없다. 오전에는 백사실계곡을 걷고, 인왕산 자락을 따라 초소책방까지 이동해 쉬었다가, 오후에는 도심을 가로질러 성북동 길상사로 넘어가는 순서가 무리가 없다. 세 곳 모두 도로가 좁아 자가용으로 이동하더라도 각 구간은 대중교통이나 도보 구간이 섞이게 되므로, 하루 코스 전체를 촘촘하게 짜기보다는 이동 여유 시간을 넉넉히 두는 편이 낫다. 정확한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은 교통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출발 전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출발 전 확인할 것

· 백사실계곡·인왕산 초소책방·길상사 모두 전용 주차 공간이 협소하거나 없어 대중교통 병행 권장
· 부암동·성북동은 도로 폭이 좁고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 많음
· 길상사 템플스테이·법회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사전 확인
· 단풍은 도심보다 늦어 10월 말~11월 중순이 적기
· 이동 구간이 길어 편한 신발과 여유 시간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