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라렌 F1 GTR — 1996년 단 9대만 만들어진 레이스 사양이다
맥라렌 F1 GTR 섀시 10R이 RM 소더비 경매에서 수수료 포함 3,465만 5,000달러에 낙찰됐습니다.
공개 경매에 나온 영국차 가운데 역대 최고가이자, 맥라렌 F1 계열 최고가입니다.
그런데 이 차, 두 번이나 크게 부서진 적이 있습니다.
1. 9대 중 한 대, 그리고 드러머의 차
맥라렌 F1 GTR은 공도용 F1을 레이스 규정에 맞춰 개조한 사양입니다. 1996년형은 단 9대만 만들어졌습니다.
섀시 10R의 소유자는 닉 메이슨이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이자, 자동차 수집가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메이슨은 이 차를 전시장에 세워두지 않고 실제로 몰았습니다. 뒤에 나올 두 번의 사고도 그래서 생긴 일입니다.
차 자체는 맥라렌이 다시 공도 주행이 가능하도록 개조했고, 관리는 F1 정비로 유명한 란잔테(Lanzante)가 맡아왔습니다.
외장은 빨강과 노랑이 섞인 화려한 리버리입니다. 이 도색 자체가 이 개체를 식별하는 표식이 됐습니다.
▲ 맥라렌 F1 후면. 이 차의 원형은 6.1L V12에 6단 수동을 얹은 공도형 F1이다
2. 르망을 달리지 못한 르망 머신
10R의 이력에서 독특한 지점은 르망 24시 본선을 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차는 1996년 4월, 르망을 앞두고 12시간에 걸친 테스트에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르망 예선(Pre-Qualifying)까지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결선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맥라렌은 이 차를 레이스 대신 홍보용으로 활용했습니다.
수집 시장에서 레이스 우승 이력은 보통 값을 크게 올리는 요소입니다. 10R에는 그 이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최고가가 나왔다는 것은, 이 개체의 가치가 전적 대신 다른 곳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9대뿐이라는 희소성, 유명 소유자, 그리고 공도 개조라는 조합입니다.
▲ 참고 이미지 — 1951년 르망 24시에 출전했던 애스턴마틴 DB2. 르망 이력은 수집 시장에서 값을 크게 좌우한다
3. 2009년 밀밭, 2017년 굿우드
이 차는 두 번 크게 부서졌습니다.
첫 번째는 2009년입니다. 시승하던 기자가 차를 밀밭으로 몰고 들어갔습니다. 복원은 란잔테가 맡았습니다.
두 번째는 2017년입니다. 이번엔 소유자인 닉 메이슨 본인이 굿우드 멤버스 미팅에서 사고를 냈습니다. 역시 수리를 거쳤습니다.
일반 중고차 시장이라면 사고 이력 두 건은 치명적입니다. 국내에서도 사고 이력은 시세를 가장 크게 깎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이 차에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 수리 주체가 명확 — F1 전문 업체 란잔테가 두 번 모두 손을 댔다
- 이력이 완전히 공개 — 숨긴 사고가 아니라 기록된 사고다
- 서사가 됐다 — 유명 소유자가 실제로 몰다 낸 사고라는 점이 개체의 이야기로 편입됐다
수집차 시장에서 "기록된 사고"와 "숨겨진 사고"는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습니다. 이 사례가 그 차이를 보여줍니다.
4. 3,000만 달러의 벽을 넘은 첫 F1
맥라렌 F1은 오래전부터 슈퍼카 수집 시장의 최상단에 있던 차입니다. 하지만 3,000만 달러를 넘긴 개체는 없었습니다.
10R이 3,465만 5,000달러로 그 선을 넘겼습니다. 동시에 영국차 공개경매 최고가 기록도 함께 세웠습니다.
"공개 경매"라는 단서가 붙는 이유는, 초고가 수집차 상당수가 비공개 개인 거래로 손바뀜하기 때문입니다. 공개 기록은 그중 확인 가능한 상단선일 뿐입니다.
이 낙찰가가 갖는 의미는 단일 개체의 값이 아닙니다. F1 계열 전체의 기준선이 위로 이동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 참고 이미지 — RM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1958년식 페라리 250 GT 카브리올레. 초고가 수집차는 이런 공개 경매와 비공개 거래로 나뉜다
5. 왜 하필 지금, 이 차인가
맥라렌 F1의 값을 밀어 올리는 요인은 기술적 희소성입니다. 6.1리터 자연흡기 V12에 6단 수동, 중앙 운전석이라는 구성은 이후 어떤 양산차도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전동화가 진행될수록 이 조합의 재생산 가능성은 0에 수렴합니다. 수집 시장에서 값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다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맥라렌 자신도 이 유산을 계속 소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34년 만에 수동변속기를 다시 꺼내든 콘셉트를 내놨고, F1을 설계한 고든 머레이는 같은 문법의 신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든 머레이 S1 — 4.2L V12에 6단 수동 기사 보기
6. 정리
맥라렌 F1 GTR 섀시 10R이 RM 소더비에서 3,465만 5,000달러(수수료 포함)에 낙찰됐습니다. 영국차 공개경매 최고가이자 맥라렌 F1 최고가입니다.
이 차는 1996년 9대 중 한 대로, 닉 메이슨이 소유했고, 2009년과 2017년 두 차례 사고를 겪었습니다. 르망 예선은 통과했지만 결선은 뛰지 않았습니다.
사고 이력이 값을 깎지 못한 이유는 수리 주체가 명확하고 이력이 모두 공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집 시장에서 기록된 사고와 숨겨진 사고는 전혀 다르게 취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