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의 T.50. 신형 S1은 이 차와 별개 프로젝트로 개발됐다
지난주 티저로만 모습을 비췄던 고든 머레이의 새 슈퍼카가 몬터레이 카 위크 '더 퀘일'에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름은 S1입니다.
제원표를 보면 2026년에 나온 차가 맞나 싶습니다. 4.2리터 자연흡기 V12, 6단 수동변속기.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터보차저도, 듀얼클러치도 없습니다. 맥라렌 F1을 설계한 사람이 34년 뒤에 내놓은 답이 이것입니다.
1. 12,100rpm — 숫자 하나가 말해주는 것
S1의 제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마력이 아니라 회전수입니다. 12,100rpm. 양산차 엔진에서 보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일반적인 양산 V8·V12는 7,000~8,500rpm에서 한계에 도달합니다. 회전수를 올리려면 피스톤과 커넥팅로드, 밸브 계통이 견뎌야 하는 관성력이 제곱으로 커지기 때문입니다. 12,000rpm대는 사실상 레이싱 엔진의 영역입니다.
엔진을 만든 곳이 코스워스라는 점이 이 숫자를 설명합니다. F1 엔진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이고, 고든 머레이의 앞선 모델 T.50에서도 12,100rpm까지 도는 V12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배기량 4.2리터에 681마력이면 리터당 약 162마력입니다. 요즘 터보 엔진이 리터당 200마력을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절대 수치가 특별히 높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흡기에서 이 수치는 회전수를 극한까지 끌어올려야만 나옵니다. 같은 마력이라도 만들어지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뜻입니다.
| 항목 | 제원 |
|---|---|
| 엔진 | 4.2L 코스워스 자연흡기 V12 |
| 최고출력 | 681마력 (508kW / 690PS) |
| 최대토크 | 500Nm |
| 최고 회전수 | 12,100rpm |
| 변속기 | 6단 수동 |
| 생산 대수 | 64대 |
▲ T.50에 얹힌 코스워스 V12. S1도 같은 회사가 만든 자연흡기 V12를 쓴다
2. 왜 지금 수동변속기인가
S1이 6단 수동을 쓴다는 점은 성능 관점에서 보면 손해입니다.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가 변속 속도, 연비, 가속 기록 모든 면에서 앞섭니다. 수동으로는 랩타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선택은 성능이 아니라 목적의 문제입니다. 고든 머레이가 만들려는 차는 기록 경신용이 아니라 운전 자체가 목적인 차입니다. 변속 레버를 직접 밀어 넣는 동작, 클러치를 밟고 회전수를 맞추는 과정이 이 차의 상품성 자체라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흐름이 다른 브랜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맥라렌이 34년 만에 수동변속기를 되살린 콘셉트를 같은 주에 공개했고, 캐딜락은 수동 V6 후륜구동 세단 CT4-V 블랙윙의 마지막 연식을 보내는 중입니다.
▲ 맥라렌 F1(사진은 레이스 사양 GTR). 고든 머레이가 설계한 이 차가 S1의 원형이다
3. 맥라렌 F1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S1은 "현대판 맥라렌 F1"으로 평가받습니다. 근거는 명확합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3인승 중앙 운전석 배치입니다. 운전자가 차 한가운데 앉고 양옆 뒤쪽으로 승객석이 놓이는 구조로, 1992년 맥라렌 F1이 처음 선보인 이후 양산차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레이아웃입니다. 시야와 무게 배분에서 이상적이지만 패키징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여기에 자연흡기 V12와 수동변속기까지 더하면, 맥라렌 F1의 설계 철학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차이는 34년간 축적된 소재와 공력 기술입니다.
다만 T.50과의 관계는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T.50은 뒤에 팬을 달아 공기를 강제로 빨아들이는 팬카 방식이 핵심이었습니다. S1은 이번 공개 자료에서 T.50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언급되지 않았고, 별개 프로젝트로 진행됐습니다.
▲ T.50. S1은 이 차의 후속이 아니라 별개 라인으로 개발됐다
4. 64대라는 숫자
S1은 전 세계 64대만 만들어집니다. 각 차량은 고객 주문에 따라 개별 제작됩니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7자리 달러(100만 달러 이상)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든 머레이의 앞선 모델인 S1 LM이 경매에서 2,060만 달러에 낙찰된 전례를 감안하면, 이 차 역시 출고 즉시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큽니다.
64대라는 숫자 자체가 상품 전략입니다. 수요보다 공급을 적게 가져가면 가치가 유지되고, 개별 주문 제작 방식은 고객 한 명 한 명을 브랜드에 묶습니다. 페라리가 원오프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5. 정리 — 전동화 시대에 나온 반대 방향의 답
정리하면 S1은 4.2리터 자연흡기 V12에 681마력, 12,100rpm, 6단 수동, 3인승 중앙 운전석, 64대 한정입니다. 2026년 기준으로 보면 거의 모든 항목이 시대를 거스릅니다.
그런데 이 차가 완판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전동화가 진행될수록 내연기관 고유의 감각을 담은 차의 희소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대량 판매를 목표로 하는 제조사는 규제 때문에 이런 차를 만들 수 없고, 소량 생산 업체만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주에 맥라렌이 수동을 되살리고, 람보르기니가 하이브리드 V12로 서킷 기록을 세우고, 고든 머레이가 자연흡기 V12를 내놨습니다. 슈퍼카 시장이 기록 경쟁과 감각 보존이라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