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채터누가 조립공장 외관, 미국 테네시

▲ 폭스바겐 채터누가 공장.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기존 5만 명에 5만 명을 더해 총 10만 명을 감원하는 '퓨처플랜 2030'을 승인했다 ⓒ 폭스바겐그룹

2026년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회복'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다. 폭스바겐이 감독이사회 승인을 거쳐 총 10만 명 규모의 감원안을 확정하고, 재규어랜드로버(JLR)가 4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으며, 혼다는 1957년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확정 짓고 미국 전기차 신차 3종의 생산을 아예 백지화했다. 세 회사 모두 배경은 비슷하다.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 미국의 관세 부담, 그리고 예상보다 더뎌진 전동화 전환 비용이 동시에 겹쳤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2020년대 초중반이 팬데믹 이후 '회복의 시간'이었다면, 2026년부터는 살아남기 위한 '통합과 감량의 10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폭스바겐: 기존 5만 명에 5만 명 더... 89년 역사상 최대 감원

폭스바겐그룹 감독이사회는 지난 9월 4일, 기존에 노사가 합의했던 5만 명 감원 계획에 5만 명을 추가해 총 10만 명(전 세계 직원 65만 7000명의 약 15%)을 감원하는 '퓨처플랜 2030(Future Plan 2030)'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12개 세부 과제로 구성된 이번 계획은 1937년 창사 이래 89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으로, 1991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단행한 7만 4000명 감원 기록을 넘어서는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감원이다. 이 중 우선적으로 독일 내 1만 9000개 일자리를 2026년 말까지 없애는 것이 1차 목표로, 전체 감원 계획의 '선두 물량'에 해당한다. 폭스바겐은 이와 함께 2035년까지 전체 모델 라인업을 최대 절반으로 줄이고, 독일 내 공장 4곳의 생산을 종료해 현지 생산능력을 연간 50만 대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한다. 구조조정에 드는 비용은 약 16조 원(약 100억 유로) 안팎으로 추산된다. 폭스바겐 측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 예상보다 느린 전기차 수요 증가, 미국 관세 부담을 감원의 핵심 배경으로 꼽았다.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 IG메탈은 볼프스부르크 본사를 비롯한 폭스바겐 사업장 12곳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고, 니더작센·작센안할트 지부장은 "감원을 강행할 경우 전례 없는 대규모 분규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스바겐 노사협의회 의장 역시 사측에 최후통첩성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등, 2024년 3만 5000명 감원 합의 이후 불과 2년 만에 규모가 3배 가까이 늘어난 데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 ID.4 GTX 전측면

폭스바겐 ID.4. 폭스바겐은 2035년까지 전체 모델 라인업을 최대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 폭스바겐그룹

재규어랜드로버: 사이버 공격 여파에 관세까지 겹쳐

JLR은 지난 9월 7일, 향후 2년에 걸쳐 전체 인력(영국 기준 약 3만 4000명)의 약 10%에 해당하는 4000명을 감원해 17억 파운드(약 3조 2000억 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원은 주로 영국 사무직 인력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회사 측은 자원한 인력 위주로 진행해 공장 생산직에는 최소한의 영향만 미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절감한 비용은 향후 5년간 150억~180억 파운드(약 28조~33조 원) 규모의 전동화·디지털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JLR은 2026년 들어 대규모 사이버 공격으로 생산이 수 주간 중단되는 타격을 입은 데다, 중국 시장 판매 부진과 미국 관세, 예상보다 낮은 전기차 채택률이 겹치며 실적이 악화된 상태다.

재규어 타입 00 콘셉트카 전측면

재규어랜드로버는 사이버 공격과 관세, 판매 부진이 겹치며 4000명 감원 계획을 내놨다 ⓒ Wikimedia Commons

혼다: 1957년 상장 이후 첫 연간 적자, 오하이오 전기차 3종 백지화

혼다는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결산에서 영업손실 4143억 엔(약 2조 6000억 원), 순손실 4239억 엔(약 2조 7000억 원)을 기록해 1957년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확정했다. 전동화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며 반영한 전기차 관련 손실만 최대 2조 5000억 엔(약 157억 달러, 약 21조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서 생산하려던 혼다 '0(제로)' SUV·세단과 어큐라 RSX 등 북미향 전기차 3종의 생산·판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다만 혼다-LG에너지솔루션 합작으로 지어진 오하이오 제퍼슨빌 배터리 공장(직원 약 600명)은 LG에너지솔루션이 지분을 혼다에 매각하며 혼다 단독 소유로 전환됐고, 혼다 측은 "가동 초기 단계인 만큼 현재 고용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에서도 둥펑혼다 합작법인이 2000명 이상 규모의 희망퇴직·인력 감축안을 내놓고 약 2주간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혼다의 공식 입장은 혼다 글로벌 뉴스룸에서 확인 가능하다.

혼다 본사 아오야마 사옥 외관, 도쿄

혼다는 전동화 전략 재검토에 따른 손실을 반영해 1957년 상장 이후 첫 연간 적자를 확정했다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공통 배경: 중국 경쟁·美 관세·전동화 비용의 삼중고

세 회사의 위기 배경은 사실상 동일한 세 가지 압력으로 요약된다.

  • 중국 업체의 가격·기술 경쟁력 상승: BYD·지리 등 중국 완성차가 자국 시장을 넘어 유럽·아시아·중남미 수출까지 빠르게 늘리면서, 기존 완성차들의 중국 내수 점유율과 수출 경쟁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 미국 관세 부담: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부품 관세 정책이 원가 구조를 압박하며, 특히 영국·독일 기반 생산분의 미국 수출 채산성을 악화시켰다.
  • 전동화 전환 비용과 수요 불일치: 완성차 업계가 앞다퉈 투자한 전기차 생산 능력에 비해 실제 수요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설비·개발 투자가 손실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 폭스바겐은 중국 경쟁 심화와 관세, 전동화 비용을 감원의 배경으로 꼽았다 ⓒ 폭스바겐그룹

산업 전체로 번지는 구조조정 도미노

세 회사 외에도 2026년 들어 스텔란티스·포드·닛산 등 여러 완성차·부품사가 크고 작은 감원·생산 조정을 발표하며, 업계 전반의 감원 규모는 이미 수십만 명 단위로 집계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흐름을 두고 "팬데믹 이후 반도체 부족 해소와 함께 찾아온 '회복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살아남기 위한 인력·설비 통합의 시간이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한국 부품업계도 남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완성차의 감량 경영은 이미 국내 부품 협력사의 납품 단가 협상 테이블까지 번지고 있다. 혼다는 최근 주요 협력사들에 프레스·단조 부품, 전장 부품,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관련 부품 등 3개 분야에서 납품 단가를 최대 30%까지 낮춰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런 원가 절감 요구가 단순한 단가 협상을 넘어 부품 표준화, 차종 축소, 생산능력 조정, 개발 기간 단축까지 한 묶음으로 진행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폭스바겐·혼다·JLR과 직접 거래하는 국내 1·2차 부품사라면 발주 물량 축소나 생산 거점 재배치에 따른 수주 변동을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규어 타입 01 콘셉트 실내 대시보드

재규어의 차세대 전기차 콘셉트 실내. JLR은 감원으로 절감한 비용을 향후 5년간 150억~180억 파운드 규모의 전동화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 Jaguar

반면 한국 완성차 업계 입장에서는 경쟁사들의 감량 경영이 상대적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다만 국내는 노동시장 경직성 탓에 유럽처럼 신속한 인력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최근 노조 파업 등으로 전동화 대응 속도 자체가 더딘 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완성차들의 구조조정이 결국 생산성·비용 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업계도 대응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카프리즘 코멘트: 감량 경영이 남긴 숙제

폭스바겐·혼다·JLR의 구조조정은 규모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전동화 투자와 실제 수요 사이의 간극', 그리고 '중국발 가격 경쟁'이라는 같은 문제에서 출발했다. 이번 감원 발표들이 일회성 비용 절감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내 부품업계와 노동시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남길지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