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레인지로버(L460). 일렉트릭은 이 차체를 공유하며, 사진은 내연기관 사양이다 ⓒ Aos.1905,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레인지로버의 순수 전기 사양인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의 제원이 공개됐다. 118.5kWh 리튬이온 배터리에 550마력, 유럽 기준 최대 600km라는 숫자만 보면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차가 넘어야 할 지점이 함께 드러난다. 공차중량 2,885kg, 견인력 2.5톤이라는 두 숫자다.
1. 숫자만 보면 부족함이 없다
118.5kWh 배터리는 대형 SUV 기준으로도 넉넉한 용량이다. 550마력(542hp)에 850Nm(86.7kgf·m) 토크로 2.9톤에 가까운 차체를 0→96km/h까지 4.3초에 밀어낸다. 참고로 이 출력은 레인지로버가 선택 사양으로 얹는 BMW 기반 4.4리터 트윈터보 V8보다 19마력, 100Nm가량 높은 수치다. 800V 전기 아키텍처를 써 350kW급 충전기에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걸리며, 도하 수심은 900mm로 내연기관 사양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주행거리는 WLTP 기준 372마일(약 599km), 미국 EPA 추정으로는 333마일(약 536km)이다.
▲ 레인지로버 L460 오토바이오그래피 실내(내연기관 사양). 일렉트릭도 같은 실내 구성을 공유한다 ⓒ Damian B Oh,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2. 2,885kg이라는 무게
▲ 현행 레인지로버 후면(내연기관 사양). 전기 사양은 배터리 탑재로 공차중량이 2,885kg에 이른다 ⓒ Aos.1905,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대형 배터리를 실으면서 공차중량이 2,885kg까지 올라갔다. 이 무게는 주행 질감과 타이어·브레이크 소모, 그리고 험로에서의 거동에 모두 영향을 준다. 레인지로버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오프로드 성능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는지가 관건이 되는 이유다.
3. 견인력 2.5톤 — V8보다 정확히 1톤 낮다
▲ 레인지로버 L460 측면(내연기관 사양). 전기 사양은 같은 차체를 쓰지만 견인 한계는 1톤 낮다 ⓒ Aos.1905,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더 직접적인 문제는 견인력이다. 전기 사양의 견인 한계는 2,500kg으로, 같은 차의 V8 가솔린 사양(3,500kg)보다 정확히 1톤 낮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3,000kg)와 비교해도 500kg이 모자란다. 애매한 차이가 아니라 세 사양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 파워트레인 | 최대 견인력 | 일렉트릭과 차이 |
|---|---|---|
| V8 가솔린 | 3,500kg (7,716lb) | +1,000kg |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 3,000kg (6,614lb) | +500kg |
| 일렉트릭(BEV) | 2,500kg (5,512lb) | 기준 |
레인지로버를 트레일러나 보트, 말 운반차 견인 용도로 쓰는 영국·미국·호주 시장에서는 이 1톤이 실질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유럽에서 흔한 2축 캐러밴이나 3.5톤급 트레일러를 끌던 고객이라면 전기 사양으로 갈아탈 때 견인 대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랜드로버는 3억 6,000만 건이 넘는 실제 고객 주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기 사양이 전체 주행의 97%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SUV의 구매 이유 중 하나가 견인 능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통계로 나머지 3%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4. 값은 3,350만 원 더 비싸다
▲ 레인지로버 L460. 전기 사양은 내연기관 대비 약 3,390만 원 비싸게 책정됐다 ⓒ Ethan Llamas,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미국 기준 시작 가격은 운송비를 포함해 14만 550달러, 환산하면 약 1억 8,980만 원이다. 같은 조건의 내연기관 기본형이 11만 5,750달러(약 1억 5,630만 원)이므로 차이는 약 2만 4,800달러, 원화로 3,350만 원가량이다.
다만 이 격차는 등급을 올릴수록 줄어든다. 오토바이오그래피에서는 V8 사양과 값이 같고, SV(22만 1,950달러)와 SV 울트라(25만 5,250달러)에서는 전기든 V8이든 가격이 동일하다. 즉 값이 비싼 것은 기본형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상위 등급에서는 전동화가 가격 페널티 없이 선택지로 들어온 셈이다.
▲ 레인지로버 L460 HSE. 상위 등급에서는 전기 사양과 V8 사양의 값이 같다 ⓒ Ethan Llamas,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기본형 기준으로 보면 무게는 늘고 견인력은 줄었는데 값은 올라간 구조여서, 구매자를 설득할 논리가 필요하다. 랜드로버가 내세우는 강점은 전기 구동계 특유의 정숙성과 저속 토크를 활용한 험로 제어, 그리고 900mm 도하 수심과 지형 반응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오프로드 성능 유지다.
※ 원화 환산은 2026년 9월 5일 기준 매매기준율(1달러 약 1,350원)을 적용한 참고치다.
5. 한 라인에서 세 가지 파워트레인을
▲ 레인지로버 L460. 전기 사양은 겉모습에서 내연기관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 Damian B Oh,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생산 측면의 변화도 눈에 띈다. 랜드로버는 영국 웨스트미들랜즈의 솔리헐 공장에서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를 같은 조립 라인에서 함께 만든다. 배터리 팩과 구동 유닛은 울버햄프턴 공장에서 생산해 공급한다. 전기차 수요가 불확실한 국면에서 한 라인으로 세 가지 수요에 대응하려는 선택으로, 앞서 BMW가 전기차 전용 라인 감원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접근이다.
6. 정리
체크포인트
- 제원은 118.5kWh·550마력·유럽 600km로 부족함이 없다.
- 다만 공차중량 2,885kg, 견인력 2,500kg으로 V8 가솔린(3,500kg)보다 정확히 1톤, PHEV(3,000kg)보다 500kg 낮다.
- 기본형 가격은 내연기관 대비 약 3,350만 원 비싸지만, SV 등 상위 등급은 V8과 동일하다.
- 국내 출시 일정과 가격은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