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아이오닉 5 N 전면 주행 모습

▲ 현대차그룹이 아이오닉 5 N의 'N e-쉬프트' 기술을 감속 영역까지 확장한 가상 변속 특허를 새로 출원했다. ⓒ 현대자동차

내연기관 스포츠카 마니아들이 그리워하는 감각 중 하나가 '엔진 브레이크'다. 기어를 낮추면 엔진 회전수가 급격히 올라가며 차체가 훅 붙잡히는 그 느낌은, 모터로만 굴러가는 전기차에는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이 이 감각을 소프트웨어로 되살리는 특허를 새로 출원한 사실이 확인됐다. 엔진이 없는 차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구현하겠다는 역설적인 발상이다.

핵심 요약: 감속 영역까지 확장된 가상 변속

이번에 출원된 특허의 핵심은 회생제동을 가상의 기어 단수·가상 엔진 회전수(RPM)·실제 차량 속도와 연동시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운전자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량은 마치 내연기관차가 특정 기어에서 감속하듯 회생제동의 세기를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기존에는 변속하는 '순간'의 충격과 사운드를 흉내내는 데 그쳤다면, 이번 특허는 감속이 지속되는 '과정' 전체를 가상 변속 로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특허 배경: 'N e-쉬프트'의 다음 단계

현대차그룹은 이미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에 'N e-쉬프트'라는 가상 변속 기술을 적용한 바 있다.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모사해 변속 충격과 가상 RPM, 레브 리미터(rev limiter)까지 구현하는 기술로, 스티어링 휠의 패들을 조작하면 실제 기어를 바꾸는 듯한 감각과 사운드가 동시에 연출된다. 이 기능은 출시 당시 BMW M 부문 최고책임자가 직접 체험 소감을 밝힐 정도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 N e-쉬프트는 어디까지나 '변속하는 순간'의 감각 구현에 집중돼 있었다. 가속 중 기어를 바꿀 때의 충격과 소리는 그럴듯하게 재현했지만, 가속페달을 떼고 감속하는 구간에서는 별도의 가상 변속 로직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신규 특허는 바로 이 빈틈, 즉 감속 영역을 정조준한다.

아이오닉 5 실내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휠

▲ 아이오닉 5 계열 실내(자료사진) — 가상 변속 시스템은 스티어링 휠 패들 조작과 계기판 표시를 통해 가상 기어·RPM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기술 원리: 가상 RPM이 회생제동 세기를 결정한다

특허 내용에 따르면 시스템은 가상 기어 단수와 가상 RPM, 실제 차량 속도를 입력값으로 삼아 동급 내연기관차가 발생시킬 법한 엔진 브레이크 수준을 계산한 뒤, 이를 회생제동 강도로 변환해 적용한다. 예를 들어 고단 기어에서 낮은 가상 RPM으로 주행 중이라면 감속력은 약하게 설정되고, 반대로 저단 기어에서 가상 RPM이 높은 상황이라면 회생제동을 강하게 작동시킨다. 가속페달을 뗀 뒤 패들로 가상 다운시프트를 하면 가상 엔진 회전수가 튀어 오르면서 감속력이 즉각 커지는 식이다.

이는 기존에 운전자가 회생제동 강도를 몇 단계 중 하나로 직접 설정하던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회생제동 세기가 고정값이 아니라, 가상 변속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맥락에 따라 실시간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운전자는 마치 실제로 기어비가 바뀌는 차를 모는 듯한 일관된 감속 감각을 얻게 된다.

기존 사례와 비교: 변속의 '순간'에서 감속의 '과정'으로

현재 아이오닉 5 N에 탑재된 N e-쉬프트는 가상 진동과 변속 충격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능이다. 스티어링 휠에는 '버추얼 기어 시프트(VGS)' 관련 장치가 적용돼 있고, 2025년형에는 변속 조작을 저장했다가 허용 회전수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변속을 실행하는 '다운시프트 메모리', 그리고 내연기관차의 엔진 브레이크와 유사한 감속감을 주는 '다운힐 어시스트' 기능도 추가됐다. 노멀, 스포츠, N 모드는 물론 에코 모드에까지 이 기능이 확대 적용되며 저변을 넓혀온 상태다. 이후 아이오닉 6 N과 제네시스 GV60 마그마에도 같은 계열의 N e-쉬프트가 이식되며 현대차그룹 고성능 전기차 라인업 전반의 공통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번 신규 특허는 이런 기존 기능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감속 국면 전반을 가상 변속 로직과 유기적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즉 변속 충격, 사운드, 감속 특성이라는 세 요소를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관리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주행 감각을 제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기술은 특허 출원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된 단계로, 특허 출원이 곧바로 양산 적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현대 아이오닉 6 N 전면 주행 이미지

▲ 아이오닉 6 N(자료사진) — N e-쉬프트는 아이오닉 5 N에 이어 아이오닉 6 N에도 적용되며 현대차그룹 고성능 전기차의 공통 기능으로 확대됐다

기아 EV6 GT라인 주행 이미지

▲ 기아 EV6(자료사진) — 업계에서는 EV6 GT 등 고성능 전기차 라인업에 신규 가상 변속 기술이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적용 예상 차종과 상용화 전망

현재 N e-쉬프트 계열 기술이 적용된 차종은 아이오닉 5 N을 필두로 기아 EV6 GT, 제네시스 GV60 등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에 새로 출원된 감속 확장 특허 역시 이들 고성능·프리미엄 전기차 라인업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특허 출원은 어디까지나 기술 보호를 위한 절차이며, 실제 양산차에 언제 어떤 형태로 반영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기차는 즉각적인 토크 반응과 우수한 회생제동 성능이라는 강점을 지녔지만, 동시에 내연기관 고성능차 특유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소비자층도 여전히 존재한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특허는 전기차의 물리적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소프트웨어만으로 감성적 만족감까지 채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회생제동 세기를 운전자가 직접 조작하는 값으로만 고정하지 않고, 가상 변속 시스템과 결합해 상황에 맞게 자동으로 조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제네시스 GV60 마그마 전면 주행 이미지

▲ 제네시스 GV60(자료사진) — 가상 변속 계열 기술은 아이오닉 5 N을 시작으로 제네시스 고성능 전기차로도 확대 적용되는 추세다

업계 반응과 의미

이런 가상 변속·가상 사운드 기술은 현대차그룹만의 시도는 아니다. 다만 변속의 순간뿐 아니라 감속의 과정까지 통째로 시뮬레이션하려는 접근은 상대적으로 이른 단계의 시도로 평가된다. 전기차 대중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다움'과 '내연기관 감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이번 특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