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최초로 적용한 아이오닉5. 이후 7개 차종이 같은 뼈대를 공유하게 됐다 ⓒ Wikimedia Commons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겉모습도, 가격도, 심지어 브랜드도 다르다. 그런데 이 둘은 배터리, 모터, 심지어 바닥 밑 뼈대까지 사실상 같은 것을 쓴다. 제네시스 GV60도 마찬가지고, 대형 SUV 아이오닉9과 기아 EV9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이 2021년 처음 공개한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위에 지어진 차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남는다. 같은 플랫폼을 쓰는데 왜 아이오닉5는 4천만 원대인데 EV9은 7천만 원대까지 올라갈까. 그리고 제네시스 라인업 중에서도 왜 유독 G80 전동화만 다른 취급을 받을까. E-GMP를 공유하는 현대차그룹 전기차들을 한 번에 정리하고, 이 질문에 답해봤다.
1. E-GMP가 정확히 뭐길래 — 스케이트보드 위의 7개 차종
E-GMP는 내연기관 차를 개조해 만든 전기차가 아니라, 처음부터 배터리와 모터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전용' 플랫폼이다. 가장 큰 특징은 납작한 배터리팩을 차체 바닥 전체에 깔아넣는 '스케이트보드' 구조다. 엔진과 변속기가 차지하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무게중심이 낮아지고, 앞뒤 오버행이 짧아진 만큼 실내 공간은 오히려 넓어진다. 같은 플랫폼 위에서 세단(아이오닉6), SUV(아이오닉5), 대형 SUV(아이오닉9)까지 서로 다른 차체를 얹을 수 있는 것도 이 구조 덕분이다.
▲ E-GMP는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넓게 깔아 무게중심을 낮추고 실내 공간을 넓히는 스케이트보드 구조를 채택했다 ⓒ Wikimedia Commons
두 번째 핵심은 800V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전기차가 400V대 충전 시스템을 쓰던 시절, E-GMP는 800V 초급속 충전을 기본으로 채택하면서 10~80% 충전을 약 18분 안팎으로 끝내는 성능을 구현했다. 별도의 승압 장치 없이도 400V 충전 인프라와 호환되도록 설계된 점도 실용적인 부분이다.
세 번째는 ICCU(통합충전제어장치)다. 배터리팩 뒷좌석 하단에 위치한 이 장치는 완속충전기(OBC)와 양방향 충전 기능을 하나로 묶어, 외부 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V2L(Vehicle-to-Load)을 가능하게 한다. 캠핑용 전자기기나 전동공구에 전원을 공급하는 기능으로, E-GMP 차량들의 공통 세일즈 포인트가 됐다.
✅ E-GMP 3대 특징
· 스케이트보드 구조: 배터리를 바닥 전체에 배치, 세단부터 대형 SUV까지 다양한 차체 지원
· 800V 시스템: 10~80% 급속충전 약 18분, 400V 인프라와도 호환
· ICCU·V2L: 충전과 방전을 하나의 장치로 통합, 외부 전자기기 전원 공급 가능
2. 현대차의 삼형제 — 아이오닉5·6·9
E-GMP를 가장 먼저, 가장 폭넓게 쓰는 곳은 현대차 아이오닉 라인업이다. 2021년 데뷔한 아이오닉5는 E-GMP를 최초로 적용한 양산차로, 박시한 디자인과 준중형 SUV 체급으로 브랜드 전동화의 기준점 역할을 했다. 이어 등장한 아이오닉6는 같은 부품을 쓰면서도 공기저항계수를 낮춘 유선형 세단으로 방향을 틀었고, 2025년 나온 아이오닉9은 3세대로 진화한 E-GMP를 바탕으로 3열까지 갖춘 대형 전기 SUV로 몸집을 키웠다.
▲ 아이오닉5와 같은 배터리·모터를 쓰지만 차체를 유선형 세단으로 바꾼 아이오닉6. 고성능 N 버전까지 파생됐다 ⓒ Damian B Oh,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아이오닉9은 3세대 E-GMP를 기반으로 한 대형 3열 전기 SUV로, 현대차 아이오닉 라인업 중 가장 큰 체급이다 ⓒ 현대자동차
세 모델 모두 국내에서는 4천만 원대 후반(아이오닉5·6)부터 6천만 원대 후반(아이오닉9)까지 트림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판매가는 트림 구성과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최신 가격은 현대차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3. 기아의 해석 — EV6와 EV9
기아는 아이오닉5와 같은 부품을 쓰는 EV6를 아이오닉5보다 먼저 양산 라인에 올렸다. 스포티한 쿠페형 크로스오버 디자인으로 차별화하면서, '같은 플랫폼이라도 브랜드마다 다른 얼굴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처음 증명한 사례로 꼽힌다. 이후 등장한 EV9은 아이오닉9과 마찬가지로 3세대 E-GMP 기반의 대형 3열 SUV로, 기아의 EV 플래그십을 맡고 있다.
▲ 기아 EV6. 아이오닉5와 배터리·모터를 공유하지만 쿠페형 크로스오버 디자인으로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 Wikimedia Commons
▲ 기아 EV9. 아이오닉9과 같은 3세대 E-GMP를 쓰는 대형 3열 전기 SUV로, 기아 EV 라인업의 최상위 모델이다 ⓒ Wikimedia Commons
EV6는 국내에서 4천만 원대 후반부터, EV9은 7천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가격대로 알려져 있다. 두 모델 모두 아이오닉 형제들과 배터리 용량 옵션이 유사해, 사실상 '기아식으로 다시 그린 같은 차'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4. 제네시스의 고급화 — 진짜 E-GMP인 GV60·GV70 전동화
제네시스에서 E-GMP를 쓰는 모델은 GV60과 GV70 전동화 두 종류다. GV60은 처음부터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된 소형 SUV로, 스티어링 휠 대신 다이얼로 기어를 조작하는 크리스탈 스피어, 지문 인식 시동 같은 제네시스만의 프리미엄 사양을 더했다. GV70 전동화는 반대로 내연기관 GV70과 같은 외형을 쓰면서 파워트레인만 E-GMP 기반으로 바꾼 파생 모델이다.
▲ 제네시스 GV60. 처음부터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된 소형 SUV로, 다이얼 기어와 지문 인식 시동 같은 브랜드 고유 사양을 더했다 ⓒ Wikimedia Commons
▲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내연기관 GV70과 외형은 같지만 파워트레인을 E-GMP 기반으로 교체한 파생 모델이다 ⓒ 제네시스
가격대는 GV60이 5천만 원대 후반, GV70 전동화가 7천만 원대부터로 아이오닉·EV 형제들보다 한 단계 위에 형성돼 있다. 같은 배터리·모터를 쓰고도 제네시스 가격이 더 높은 이유는 다음 장에서 짚어본다.
5. 그런데 G80 전동화는 E-GMP가 아니다
이름과 트림 구성만 보면 G80 전동화도 같은 E-GMP 가족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G80 전동화는 처음부터 전기차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 G80이 쓰는 기존 후륜구동 플랫폼(M3 계열)을 개조해 배터리와 모터를 끼워 넣은 차량이다. 해외 매체들이 이 차를 두고 'E-GMP와 기존 플랫폼을 뒤섞은 하이브리드형 구조'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 구분 | E-GMP 기반 차종 | G80 전동화 |
|---|---|---|
| 설계 방식 | 처음부터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 | 내연기관 G80 플랫폼을 개조 |
| 배터리 위치 | 차체 바닥에 넓게 배치 | 기존 차체 구조에 맞춰 탑재 |
| 대표 차종 | 아이오닉5·6·9, EV6·EV9, GV60, GV70 전동화 | G80 전동화(단독) |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태생이 다른데도, 해외 리뷰에서는 G80 전동화가 오히려 효율성 면에서 뜻밖의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800V 시스템을 비롯해 E-GMP의 핵심 전장 부품 일부를 공유하면서도, 세단 특유의 낮은 차체와 공기저항 덕을 봤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플랫폼 자체가 E-GMP라는 의미는 아니며, 어디까지나 부품 일부를 이식한 결과에 가깝다.
6. 같은 플랫폼인데 왜 가격·성격이 다를까
배터리와 모터라는 '엔진'은 공유해도, 최종 상품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 브랜드 | 모델 | 체급 | 포지셔닝 |
|---|---|---|---|
| 현대 | 아이오닉5 | 준중형 SUV | E-GMP 최초 양산차, 브랜드 전동화 기준점 |
| 아이오닉6 | 중형 세단 | 유선형 디자인, 고성능 N 파생 | |
| 아이오닉9 | 대형 3열 SUV | 3세대 E-GMP, 패밀리용 플래그십 | |
| 기아 | EV6 | 준중형 크로스오버 | 쿠페형 디자인, 스포티한 포지셔닝 |
| EV9 | 대형 3열 SUV | 기아 EV 플래그십 | |
| 제네시스 | GV60 | 소형 SUV | 전기차 전용 설계, 프리미엄 UX 사양 |
| GV70 전동화 | 준중형 SUV | 내연기관 GV70의 전동화 파생형 |
첫째는 배터리 용량과 모터 출력 구성이다. 같은 플랫폼이라도 트림별로 스탠다드·롱레인지 배터리, 단일·듀얼 모터 구성이 갈리면서 기본가부터 차이가 벌어진다. 둘째는 차체 크기와 3열 유무다. 아이오닉9·EV9처럼 3열까지 갖춘 대형 SUV는 차체와 배터리 용량 자체가 커지는 만큼 가격도 자연히 높아진다.
셋째는 브랜드 포지셔닝이다. 제네시스는 같은 부품을 쓰더라도 마이크로파이버 스웨이드 시트, 크리스탈 소재 기어 다이얼, 프리미엄 오디오 같은 상위 트림 사양과 브랜드 프리미엄을 더해 가격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현대·기아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며 판매 볼륨을 확보하는 전략을 쓴다. 같은 뼈대 위에서 세 브랜드가 각자 다른 '체급'을 노리는 셈이다.
7. E-GMP의 다음 — eM 플랫폼과 GV90의 등장
▲ 제네시스가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뉴론(Neolun)'. eM 플랫폼 1호 양산차인 GV90의 디자인 방향을 미리 보여준 모델이다 ⓒ 제네시스
E-GMP도 영원하지는 않다. 현대차그룹은 2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M'을 준비해 왔고, 그 첫 양산차로 낙점된 제네시스 대형 SUV GV90은 2026년 8월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런칭 행사에서 실물을 공개했다. 국내 출시는 이 기사가 나온 시점 기준으로 2026년 9월 29일로 예정돼 있어, E-GMP에서 eM으로의 전환은 이제 계획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됐다. 두 번째 eM 기반 모델로는 2026년 3분기 안에 2세대 제네시스 GV80 EV가 뒤따를 예정이다.
eM은 E-GMP 대비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50%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개발됐고, 레벨3 이상 자율주행 기술과 상시 무선 업데이트(OTA) 지원을 기본 설계에 포함시켰다. 애초 2025년 4분기 양산을 목표로 했지만 생산 여건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2026년 1분기 양산으로 일정이 한 차례 조정된 바 있다.
다만 eM이 등장한다고 해서 E-GMP 차종들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오닉5·6·9, EV6·EV9, GV60, GV70 전동화는 당분간 페이스리프트와 연식변경을 거치며 현대차그룹 전기차 라인업의 중추 역할을 이어갈 전망이다.
E-GMP는 현대차그룹이 '같은 뼈대로 다른 차를 만드는 법'을 증명한 플랫폼이다. 아이오닉5부터 GV70 전동화까지 7개 차종이 800V 시스템과 배터리 바닥 배치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면서도, 체급과 브랜드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과 가격표를 갖게 됐다.
흥미로운 건 예외다. 이름만 보면 한 가족 같은 G80 전동화가 사실은 E-GMP가 아니라는 사실은, 오히려 '같은 플랫폼을 쓴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짚어보게 만든다. E-GMP가 eM에 자리를 내줄 날도 머지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 일곱 대의 차가 현대차그룹 전동화 전략의 한복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