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에서는 빛을 세게 쏠수록 시야가 나빠진다. 물방울이 빛을 되돌려 보내기 때문이다
안개가 짙어지면 본능적으로 상향등에 손이 갑니다. 더 밝게 비추면 잘 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입니다. 시야가 더 나빠집니다.
이유는 물리에 있습니다. 안개는 공기 중에 떠 있는 미세한 물방울이고, 물방울은 빛을 사방으로 흩어 되돌려 보냅니다. 강한 빛일수록 되돌아오는 빛도 강해집니다.
1. 상향등이 안개에서 역효과인 이유
백벽 현상(white wall effect)이라고 부릅니다.
상향등은 빛을 멀리, 위쪽으로 보냅니다. 맑은 날에는 원거리 시야를 크게 늘려줍니다.
그런데 안개 속에서는 그 빛이 눈앞의 무수한 물방울에 부딪혀 사방으로 산란됩니다. 상당량이 운전자 눈으로 되돌아옵니다.
결과는 눈앞에 흰 벽이 생긴 것 같은 상태입니다. 빛을 세게 쏠수록 벽이 두꺼워집니다.
하향등은 빛을 아래쪽으로 보냅니다. 안개층을 정면으로 관통하지 않고 노면을 비추기 때문에 산란이 덜합니다.
안개등이 범퍼 아래쪽에 달려 있는 이유도 같습니다. 안개는 지면에서 조금 떨어진 높이에 더 짙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어, 낮은 위치에서 노면과 차선을 비추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하향등과 안개등은 노면을 비춘다. 안개층을 정면으로 관통하지 않아 산란이 덜하다
2. 주간주행등의 함정
이건 많은 운전자가 모르고 지나가는 문제입니다.
주간주행등(DRL)은 시동을 켜면 자동으로 들어오는 등입니다. 낮에 다른 차에게 내 존재를 알리는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핵심 문제는 이것입니다. 주간주행등만 켜진 상태에서는 후미등이 켜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면 밝게 빛나고 있으니 운전자는 등을 켠 줄 착각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보면 완전히 어두운 차입니다.
야간이나 터널에서 이 상태로 달리면 뒤차가 내 차를 늦게 인식합니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착각을 부추기는 요인도 있습니다. 요즘 차는 계기판이 상시 발광합니다. 예전에는 전조등을 켜야 계기판이 밝아져서 자연스럽게 확인이 됐는데, 지금은 그 단서가 사라졌습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라이트 스위치를 AUTO에 두는 것입니다. 조도 센서가 어두워지면 전조등과 후미등을 함께 켜줍니다.
3. 상황별 등화 정리
| 상황 | 권장 | 피할 것 |
|---|---|---|
| 짙은 안개 | 하향등 + 안개등 | 상향등 |
| 야간 일반도로 | 하향등 | 주간주행등만 켠 상태 |
| 야간 가로등 없는 도로 | 하향등, 대향차 없을 때 상향등 | 대향차 있을 때 상향등 |
| 터널 | 하향등 (후미등 확인) | 주간주행등만 |
| 폭우 | 하향등 + 안개등 | 상향등 |
| 정차·고장 | 비상등 + 안전삼각대 | 주행 중 비상등 상시 점등 |
야간 가로등 없는 도로에서는 상향등이 유용합니다. 다만 대향차나 앞차가 보이면 즉시 하향해야 합니다.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빼앗는 행위이고, 그 자체가 사고 요인입니다.
4. 비상등을 주행 중에 계속 켜면 안 되는 이유
폭우나 안개에서 비상등을 켜고 계속 달리는 차를 자주 봅니다. 좋은 의도이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①방향지시등을 쓸 수 없습니다. 비상등은 좌우 지시등을 동시에 점멸시키는 기능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차로 변경 의도를 알릴 방법이 없습니다.
②정지 차량으로 오인됩니다. 비상등은 관례적으로 "이 차는 정상 주행이 어렵다"는 신호입니다. 달리는 차가 켜고 있으면 뒤차가 판단을 헷갈립니다.
③불빛에 다른 정보가 묻힙니다. 점멸하는 빛이 브레이크등 인식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용도는 이렇습니다. 정차·고장·사고 시, 그리고 급제동 직후 뒤차에 위험을 알리는 짧은 순간입니다. 위험 구간을 벗어나면 끄는 것이 맞습니다.
주행 중 시인성을 높이고 싶다면 비상등이 아니라 전조등과 안개등이 맞는 수단입니다.
▲ 대향차가 있을 때 상향등은 상대의 시야를 빼앗는다. 그 자체가 사고 요인이다
5. 등화보다 중요한 것 — 속도와 거리
등화를 정확히 써도 안개 속에서 시야가 확보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속도와 거리로 대응해야 합니다.
가시거리 100m 미만이면 최고속도의 50% 이상 감속이 권장됩니다. 실제로는 내가 볼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멈출 수 있는 속도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행동은 앞차의 미등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안개에서 앞차 미등은 유일하게 잘 보이는 표지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거리를 좁히게 됩니다.
그런데 앞차가 급제동하면 피할 공간이 없습니다. 안개 속 다중 추돌이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차로 표시(차선)를 기준으로 삼는 편이 낫습니다. 안개등은 노면을 비추므로 차선은 비교적 잘 보입니다. 앞차가 아니라 차선을 보고 달리면 거리 유지가 가능합니다.
▲ 앞차 미등을 따라가지 말고 차선을 기준으로 달리는 편이 안전하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리로 주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6. 정리
안개에서는 상향등이 아니라 하향등 + 안개등입니다. 강한 빛은 물방울에 산란돼 되돌아오고, 눈앞에 흰 벽을 만듭니다.
주간주행등만 켜진 상태에서는 후미등이 켜지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밝아 보여도 뒤에서는 어두운 차입니다. 라이트 스위치를 AUTO에 두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비상등을 주행 중 계속 켜는 것은 오용입니다. 방향지시등을 쓸 수 없게 되고, 뒤차가 정지 차량으로 오인합니다.
그리고 등화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차간거리입니다. 앞차 미등을 따라가지 말고 차선을 기준으로 달리는 편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