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세데스-벤츠 EQA. 이번 연구에서 15만km 주행 후 배터리 상태 94%를 기록해 전체 20개 모델 중 1위를 차지했다 ⓒ Wikimedia Commons
1. '배터리 열화'란 무엇인가
전기차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할수록 최대 저장 용량이 조금씩 줄어드는데, 이를 '배터리 열화(degradation)'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을 오래 쓰면 완충해도 하루를 못 버티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배터리 상태(State of Health, SOH)는 출고 당시 용량 대비 현재 남아 있는 용량의 비율로 나타내며, 예를 들어 SOH 94%는 새 차 대비 주행 가능 거리가 약 6% 줄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수치가 제조사마다, 심지어 같은 차종 안에서도 개체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제조사의 실험실 데이터나 소규모 표본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독립 배터리 진단업체 아빌루(Aviloo)가 실제 도로 위 차량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테슬라 모델Y. 이번 연구에서 15만km 주행 후 배터리 상태 90.3%를 기록했다 ⓒ Wikimedia Commons
2. 50만 건 실측 데이터, 역대 최대 규모 연구
아빌루는 이번 연구를 위해 50만 건 이상의 배터리 진단 테스트 데이터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실제 소유주들의 차량에 진단 장비를 연결해 배터리의 실제 방전 특성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제조사가 발표하는 이론적 수치가 아니라 도로 위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성능 저하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업계에서 신뢰도가 높게 평가되는 방법론이다. 조사 대상은 인기 EV 20개 모델로, 주행거리 구간별로 배터리 상태를 비교했다.
📍 SOH(배터리 상태)는 어떻게 측정하나
아빌루 같은 전문 진단업체는 차량에 별도 장비를 연결해 배터리를 강제로 충·방전시키며 실제 저장 가능한 전력량을 측정한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주행가능거리 추정치보다 훨씬 정밀하며, 중고 전기차 거래 시 배터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용도로도 널리 쓰인다.
3. 9만3,205마일(15만km) 뒤, 메르세데스 EQA가 1위
93,205마일(약 15만km) 주행 구간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A는 배터리 상태 94%를 기록해 조사 대상 20개 모델 중 최상위에 올랐다. 같은 구간에서 테슬라 모델Y는 90.3%, 모델3는 88.9%에 그쳐 EQA에 뒤처졌다. 15만km는 통상적인 승용차 폐차 주행거리에 근접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차량 수명 동안의 배터리 내구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 순위 | 모델 | 배터리 상태(SOH) |
|---|---|---|
| 1 | 메르세데스-벤츠 EQA | 94% |
| 2 | 현대 아이오닉5 | 93.8% |
| 3 | BMW i4 | 93.6% |
| 4 | 현대 코나 EV | 93% |
| 5 | 볼보 XC40 리차지 | 92.8% |
| 6 | 포드 머스탱 마하-E | 92.5% |
| 6 | 폴스타 2 | 92.5% |
| - | 테슬라 모델Y | 90.3% |
| - | 테슬라 모델3 | 88.9% |
흥미로운 점은 초기 주행거리 구간에서는 순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31,068마일(5만km) 시점에서는 현대 아이오닉5가 97.1%로 가장 우수했고, 메르세데스 EQA(96.6%)와 현대 코나 EV(96.3%)가 뒤를 이었다. 즉 초반 열화 속도와 장거리 누적 열화 속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 현대 아이오닉5. 5만km 구간에서는 97.1%로 전체 1위, 15만km 구간에서도 93.8%로 2위를 지켰다 ⓒ Wikimedia Commons
▲ BMW i4. 15만km 구간에서 배터리 상태 93.6%를 기록해 3위에 올랐다 ⓒ Wikimedia Commons
4. 하위권 모델과 개체 편차 최대 13.5%
반대로 하위권으로 분류된 모델은 르노 조에(87.3%), 미니 쿠퍼 SE(87.1%), 닛산 리프 ZE1(86.7%) 등이었다. 이들 모델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배터리 화학 조성이나 열관리 시스템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장거리 누적 열화가 더 두드러졌다.
아빌루는 또 하나 중요한 발견으로 같은 차종이라도 배터리 상태가 개체별로 최대 13.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배터리 화학 조성이나 설계뿐 아니라, 충전 습관(급속충전 빈도), 주행 환경(기후), 주차·보관 방식 등 사용자 요인이 열화 속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 이번 연구, 이것만은 확인하세요
· 아빌루의 50만 건 이상 실측 데이터 기반, 20개 인기 EV 모델 비교
· 15만km(9만3,205마일) 주행 후 메르세데스 EQA 94%로 1위, 테슬라 모델Y·모델3보다 우수
· 5만km(3만1,068마일) 구간에서는 현대 아이오닉5가 97.1%로 1위
· 동일 차종 내에서도 배터리 상태 편차가 최대 13.5%포인트 발생
· 상위권 모델은 15만km 주행 후에도 손실이 5% 미만 수준
5. 이 연구가 말해주는 것
가장 중요한 결론은 상위권 EV들의 배터리가 예상보다 훨씬 튼튼하다는 점이다. 15만km를 달린 뒤에도 상위 모델들의 용량 손실이 5% 미만에 그쳤다는 것은, 자동차의 일반적인 수명 주기 동안 배터리 성능 저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고 전기차를 구매할 때는 단순히 브랜드나 연식만 볼 게 아니라, 실제 SOH 진단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신뢰도 높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아빌루의 진단 서비스 관련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가기
▲ 충전 중인 EQA. 안정적인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이 이번 조사에서 우수한 내구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 Wikimedia Commons
6. 정리
아빌루의 대규모 실측 조사 결과, 메르세데스-벤츠 EQA는 15만km 주행 후에도 배터리 상태 94%를 유지해 테슬라 모델Y(90.3%)와 모델3(88.9%)를 앞섰다. 현대 아이오닉5·코나 EV, BMW i4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우수한 배터리 내구성을 입증했다. 다만 같은 차종이라도 충전 습관과 사용 환경에 따라 배터리 상태가 최대 13.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절대적인 브랜드 순위보다는 개별 차량의 실측 진단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이번 연구가 남긴 메시지다.